개인/이야기

자만과 나. (우매함의 봉우리 - 절망의 계곡 그 어딘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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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더닝 크루거 효과 - 자신감에 관한 곡선

예전에(아마 중학생 때) 이런 사진을 본 적이 있다. 더닝 크루거 효과를 곡선으로 간단명료하게 나타낸 것이라고는 하는데, 실제로 관련된 논문을 찾아보니까 조금 다른 내용이었다. 그때는 별 관심이 없어서 그냥 지나쳤다.

그리고 대학생이 되어 이 사진을 우연히 다시 보게 되었다. 『어린 왕자』마냥 다 크고 나서 보니까 다르게 보였다. 마치 내 지금까지의 삶을 그래프로 축약하면 비슷한 모양이 나오겠더라 싶다. 재미있을 것 같아서 위의 곡선과 나의 인생을 연관 지어 글을 작성해보았다. (글쓰기 연습도 할 겸..)

 

 


우매함의 봉우리

우매함의 봉우리 단계에서의 특징은 가지고 있는 지식/기술보다 자신감이 너무나도 높다는 것이다. 그런고로 자신이 가진 지식과 기술을 고평가하게 된다.

나한테 있어서 우매함의 봉우리는 중학교 과정 내내였던 것 같다. 겨우 아두이노로 LED를 조작할 줄 아는 정도인데 세상 뭐든 다 만들 수 있을 거란 자신감에 꽉 차 있었고, 도내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이후로 자신감은 하늘을 찌르게 되었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조잡한 작품들뿐이었지만 그때는 내가 발명왕이 될 것 같은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그러한 자신감을 간직한 채로 특성화 고등학교에 입학했고, 중학교 내내 쌓은 전공 지식 덕분에 성적은 과에서 최고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활동이나 수상 부분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2학년 2학기, 내 자신감 수치는 드디어 우매함의 봉우리 최고점을 찍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웃기지만 그때만큼은 내가 정말 전국구 학생인 줄 알고 있었다.

 

 


절망의 계곡

절망의 계곡 단계는 곡선을 보면 알듯이 갑자기 자신감이 빠른 속도로 줄어들게 된다. 5,000자를 채워야 하는 작문 과제가 있다고 했을 때, 어느 정도 다 쓴 줄 알고 안도했었데 글자 수를 세보니 겨우 500자 쓰고 있는 기분이랄까. (글을 잘 쓰면 비유도 잘 할 수 있을 텐데 아쉽기만 하다) 쨌든, 앞으로 배워야 할 것이 산더미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일 것이다.

나의 절망의 계곡 시기는 고등학교 3학년에 찾아왔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수많은 현실을 마주하게 되면서 나의 자신감은 점점 무너지게 되었다. 

 

정저지와(井中之蛙)

나는 지금까지 이 세상에서는 황하가 가장 넓은 줄로 알고 있었는데,
지금 이 바다를 보고서야 넓은 것 위에 보다 더 넓은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소.

≪莊子(장자)≫

 

나는 ㅁㅁ은행 특성화고 특별채용을 준비했다. 솔직히 코딩테스트, 직무면접, 인·적성 검사 모두 문제없이 통과했으나 문제가 된 것은 최종면접이었다. 합격 여부에 당락을 가르는 중요한 면접인데도 이상하게(당시엔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겠지만) 근거 없는 안도감이 자꾸만 들었다. 준비하면서 "부족해! 더 준비하자"보다는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같은 생각을 더 했다. 그리고 이것들이 입행 준비를 하면서 사용한 공부 노트에도 그대로 반영된 것 같다. (뒤로 가면 갈수록 내용이 심각하게 빈약하다) 결국 부족했던 준비 과정이 패착 요소로 작용했는지 최종합격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아마 이것이 내 인생에서는 두 번째로 큰 실패지만 전공 관련해서는 처음 겪는 실패라 엄청난 충격이었다. 물론 "나 같은 대인을 왜 뽑지 않는 것이냐!" 같은 생각을 한 것은 아니다. 아마 그랬으면 지금도 우매함의 봉우리에서 허덕이고 있었을 것이다. 다행이게도 그런 것은 아니고, 나의 위치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의 위치가 맞는지 생각하게 된 첫 번째 사건이었다. 위의 사건이 어느 정도 자신감을 꺾은 것은 분명하나 나를 완전히 절망의 계곡으로 추락시키진 못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바로 나의 자신감을 무너트린 사건이 발생한다.


입행 실패 이후, 대학 원서도 다 넣어놓은 후이기 때문에 할 게 없어서 아두이노나 만지면서 아무거나 만들던 도중, 동아리 선생님께서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AVR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하셨다. 그때 나는 "내가 못할 게 뭐 있나" 정도의 자신감이 있기도 했고, 어려워 봤자 아두이노의 어려운 버전이겠지 생각하며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내가 AVR 책을 편 지 얼마 안 되어 산산이 조각났다. 아두이노를 그렇게 해도 책 내용의 10%도 이해를 할 수가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그 당시에는 내가 6년 가까이 애들 장난이나 치며 허송세월하였구나 같은 생각을 했다. (물론 지금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AVR을 어느 정도 배운 지금으로서는 아두이노나 AVR이나 모두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훌륭한 컴퓨팅 도구라고 생각한다. 이때는 정말 충격에 휩싸였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우매함의 봉우리에서 절망의 계곡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이런 사건을 겪는 와중에도 어느 정도 자신감은 남아있었다. 바로 성적과 관련된 자신감이다. 이때 나는 학교에서 5위권, 과에서 명실상부한 1위 자리를 가지고 있었다. 성적이 낮아지는 등의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으므로 성적에 관련된 자신감만은 건재했다. 이 상황에서 드디어 입시 결과를 받게 되었다. 그런데 원서를 넣은 6개의 대학 중, 단 2개 만이을 합격했고, 그마저도 1개는 추가 합격으로 붙으며 나의 성적이 그렇게 높은 것이 아님을 체감하게 되었다, 그렇게 남은 자신감마저 모두 박살나며 그대로 나는 절망에 계곡에 빠져버렸다.

 

 


깨달음의 비탈길을 향해..

정저지와(井中之蛙), 우물 안 개구리라는 뜻이다. 지금까지 나는 바다에서 노는 상어인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사건을 통해 나는 우물 안에서나 왕인 개구리임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껏 나는 우물 안에서 놀며 내가 최고인 것 마냥 자만에 떨었고, 결국 우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내 자만이 낳은 결과물에 의해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두려움에 다시 우물 안으로 들어가는 겁쟁이를 자처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상황에 만족하며 우물 안으로 돌아가 겁쟁이처럼 사는 것보다 힘들더라도 야생에 적응해서 더 넓은 들판에서 뛰놀 수 있는 개구리가 되어 살아가고 싶다.

지금까지 글을 보면 자신감은 나쁜 것임을 주장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절대 그런 것은 아니다. 너무 낮은 자신감은 앞으로 여러분이 무엇을 하든 간에 여러분에게 의심과 불안을 줄 것이다. 다만, 너무 부풀려진 자신감은 여러분에게 자만과 오만을 주기 더 쉬울 것이다. 적당한 자신감을 찾아가는 것은 어려운 과정이다. 다만 내가 직접 당하면서 깨달은 것은 전공 공부만으로는 적당한 자신감을 찾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혹시나 이 글을 읽고 있는 학생이 있다면 좀 더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그것이 인문학이든 예체능이든. 물론 전공 분야에서 뛰어난 것도 좋고, 그것을 위해 전공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매우 좋다. 다만, 세상은 여러분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넓다는 것을 깨닫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전공 공부와 견주어도 절대 지지 않을 정도라고 말해주고 싶다.

 

 

 

 

길고 두서없는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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